9월 뉴욕에서 런던으로, SS27 시즌이 열린다
타는 듯한 여름 볕에 그을렸던 살갗이 서서히 옅어지고, 신발장 한쪽에 벗어둔 슬리퍼도 다시 제자리를 찾을 때가 됐다. 8월의 끝자락,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학과 출근 준비로 일상의 리듬을 되찾는 이 시기에 패션 업계는 정반대 방향에서 새로운 리듬을 시작한다. 2027년 봄여름(SS27) 기성복 컬렉션 시즌이 문을 여는 것이다. 9월 10일 뉴욕에서 첫 쇼가 열리고, 그다음 주 무대는 런던으로 넘어간다. 계절의 전환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곳이 각자의 옷장이라면, 패션위크는 그 감각을 업계 전체가 한자리에서 확인하는 연례 행사에 가깝다. 이번 시즌은 유독 '거대한(mammoth)' 규모로 불릴 만큼 복귀하는 이름들과 새로 데뷔하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 베일에 싸인 오프스케줄 이벤트까지 겹쳐 있어, 단순한 신상 공개를 넘어 한 시즌 전체의 방향을 가늠하는 자리로 주목받는다. 매년 이맘때 옷장을 정리하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낼지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업계 전체가 일제히 다음 계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신호로 읽힐 만하다.
무엇이 달라졌나
패션위크의 골격 자체는 해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뉴욕이 먼저 문을 열고 런던, 밀라노, 파리로 이어지는 순서는 오랜 관행이다. 그런데 이번 SS27 시즌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유독 강조되는 단어가 '거대한(mammoth)'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컬렉션이라는 틀은 같지만, 그 안을 채우는 밀도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한동안 쇼를 쉬었던 이름들의 '그랜드 리턴'과 처음으로 런웨이에 서는 신인 디자이너들의 데뷔가 같은 시즌에 겹치고, 여기에 정식 일정표에는 없는 오프스케줄 비공개 행사까지 예고돼 있다. 패션위크를 매 시즌 정리하는 입장에서 보면, 대개는 한두 브랜드의 이슈만 짚어도 그 시즌의 요약이 됐다. 이번처럼 컴백과 데뷔, 비공개 이벤트까지 세 갈래가 동시에 예고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예년 같으면 한두 가지 이슈로 정리됐을 시즌이, 이번에는 복귀·데뷔·깜짝 발표라는 세 갈래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캘린더의 틀은 그대로여도, 그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규모와 종류가 늘어난 것이 이번 시즌이 이전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왜 지금인가
패션위크가 매년 늦여름에 열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봄여름 기성복 컬렉션은 이름 그대로 다음 해 봄여름 상품을 미리 보여주는 자리다. 소매업체와 바이어들이 다음 시즌 발주를 결정하려면 반년 이상의 리드타임이 필요하고, 그 역산의 출발점이 바로 지금이다. 동시에 이 시기는 일반 소비자에게도 계절이 바뀌는 체감 지점과 정확히 겹친다. 여름휴가의 그을림이 가시고 슬리퍼 대신 다른 신발을 꺼내는 시점, 옷장을 정리하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루틴이 시작되는 바로 그 타이밍에 업계의 시즌도 함께 열리는 것이다. 뉴욕이 먼저 열고 런던이 그다음 주에 이어받는 순서에도 나름의 셈법이 있다. 도시 간 화제가 끊기지 않도록 시차를 두고 배치해, 한 도시의 열기가 식기 전에 다음 도시로 관심이 넘어가게 만드는 구조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음 시즌 컬렉션 소식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패션위크 개막일 자체가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알려주는 대중적인 기준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도 있다. 산업의 일정과 개인의 계절 감각, 소매의 발주 주기가 같은 한 주에서 만나는 셈이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타이밍인 셈이다.
다음에 볼 것
지금 확인된 것은 뼈대뿐이다. 9월 10일 뉴욕에서 SS27 시즌이 개막하고, 그다음 주 런던으로 이어진다는 일정과 이번 시즌이 유독 크고 복잡하다는 예고까지가 현재까지 나온 정보다. 정작 궁금한 디테일, 즉 어떤 이름이 돌아오고 어떤 신인이 데뷔하는지, 그리고 오프스케줄로 예고된 '비밀 계획'이 무엇인지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이 부분은 런던 일정이 가까워지면서 하나씩 공개될 예정이라 이어지는 소식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새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패션위크도 시즌이 열리는 순간부터 발표를 하나씩 따라가야 전체 그림이 맞춰지는 이벤트다. 뉴욕에서 먼저 어떤 분위기가 만들어지는지 지켜보면 런던에서 이어질 흐름을 가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번 시즌 공개되는 컬렉션들 가운데 유행으로 반짝하고 사라질 것과, 오래도록 옷장에 남을 것을 가려보는 것도 이 시즌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의미 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결국 이번 SS27 시즌을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오래 남을 컬렉션과 한 시즌으로 사라질 화제 중 어느 쪽이 더 많을지, 그 답은 앞으로 몇 주 안에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